2012년 05월 16일
미묘한 감정이 흐르는 결혼식장 풍경.

동생은 자기가 해준 머리가 마음에 든다며 아파트 나무 앞에서 어색한 포즈의 사진을 요구했고, 부자연스러운 콘셉트의 사진을 찍는 것에 익숙한 나는 또 시키는 대로 먼 곳을 바라보며 지긋한 표정으로 동생에게 화답했다. 그러느라 결혼식장에는 아슬아슬하게 도착해서 겨우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얼굴을 아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보인다. 그날 주인공이 고등학교 친구라, 내 친구는 아니지만 얼굴만 아는 동창들이 어색한 손짓으로 인사를 건넸다.
급하게 집에서 나오느라 결혼반지도 깜빡하고 유부녀의 상징인 C사의 가방만 겨우 챙겨 나온 나는 결혼식이 진행되는 동안, 또 특유의 취미를 살려 그들을 하나하나 관찰하기 시작했다. 남을 관찰하는 버릇은 정말이지,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일부러 하는 것도 아닌데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진행되어서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모든 관찰이 끝난 후다.
어쨌거나 동창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누어지는데, 그 기준은 물론 결혼의 유무이다. 결혼한 친구들은 어김없이 왼손 약지에 큼지막한 다이아몬드가 박힌 무거워 보이는 반지를 끼고 있고 그 중 몇몇은 나와 똑같은 가방을 의자에 걸어놓고 있었다. 같은 테이블에 앉은 친구는_이 친구는 동창보다 가까운 진짜 친구이다_두 아들 중 첫째 아들만 데리고 왔는데 그녀의 의자에도 내 것과 체인 색만 다른 가방이 걸려 있었다. 30개월쯤 된 그 친구의 아들은 엄마와 가방이 똑같아서인지 유독 나를 잘 따라 집에 갈 때까지 처음 본 내 손을 잡고 놀았다.
나뿐만 아니라 아마 그 친구들도 나를 보며 이미 자기 머릿속에서 많은 것들을 스캔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누가 나보다 잘살고, 누가 나보다 못 사는지까지 어쩌면 계산을 마쳤을지도 모른다. 결혼한 사람은 알겠지만 결혼 생활이라는 것은 밖에서 보는 것만으로는 쉽사리 알 수 없는 일이라, 속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겉으로 보기엔 다들 고만고만하게 사는 것 같았다. 고등학교 때는 전교 회장까지 하고 우리 동네에서 예쁘기로 소문났던 같은 테이블에 앉은 친구는 26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결혼한다고 해서 깜짝 놀랐었다. 그러고 나서 바로 회사를 그만 둔 건 지방에서 알아주는 부잣집에 시집간 덕분이라 생각했지만 그래도 자기 일을 그렇게 쉽게 그만둔 건 조금 의외였다. 그리고 지금은 아들 둘을 둔 엄마로 살고 있다. 물론 엄마로 사는 것이 나쁘다는 건 전혀 아니지만 대학생 때까지만 해도 동문회며 동아리 등 다양한 활동을 즐기던 친구가 남편 회사 근처에 집을 얻고 아기만 바라보고 산다는 것이 조금 아쉬울 때도 있다.
엄마가 되면 100% 엄마, 혹은 0% 엄마로 나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요즘 깨닫고 있는데, 괜히 어중간하게 50% 엄마로 살려고 하니 이것도 저것도 안 되는 것 같다. 어디를 가도 미안한 일만 가득하고, 미안한 사람들만 많다. 그것 때문에 더 잘하려고 하면 괜히 내 몸에 병나겠다 싶어서 요즘은 너무 욕심부리지 않으려 한다.
어쨌거나 결혼식장에서 만난 동창들을 보면, 결혼한 친구는 안 한 친구의 자유가 부럽고, 안 한 사람은 결혼한 사람이 내뿜는 그 특유의 안도감이 부러운 것 같았다. 그리고 누군가는 남을 보면서 안도감을 느끼는 것 같기도 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묘한 감정의 선들이 마구잡이로 난무하는 결혼식장. 이런 생각을 하느라 교회식으로 진행된 결혼식은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하지만 주인공은 자신들의 감정을 다스리는 것만 해도 정신이 없을 테니 나 하나쯤 딴생각으로 앉아있다 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 by | 2012/05/16 00:45 | 새벽의 기분 | 트랙백 | 덧글(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