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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묘한 감정이 흐르는 결혼식장 풍경.

지난 주말, 친한 친구의 결혼식이 있어 엄마에게 아기를 맡겨 두고 부랴부랴 결혼식장으로 향했다. 아기를 데리고 친정에 오느라 내 옷은 제대로 챙기지도 못해 블라우스며 스커트, 모두 동생 것으로 대강 빌려 입고 간단한 화장도 동생이 쓱싹쓱싹. 난생처음 얼굴에 블러셔도 발랐다. 이 나이에도 새롭게 해보는 일들이 있다는 사실이 더욱 놀라운데, 블러셔의 효과는 예상외로 뛰어나서 살짝 홍조를 띤 뺨은 확실히 생기가 넘쳤다.
동생은 자기가 해준 머리가 마음에 든다며 아파트 나무 앞에서 어색한 포즈의 사진을 요구했고, 부자연스러운 콘셉트의 사진을 찍는 것에 익숙한 나는 또 시키는 대로 먼 곳을 바라보며 지긋한 표정으로 동생에게 화답했다. 그러느라 결혼식장에는 아슬아슬하게 도착해서 겨우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얼굴을 아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보인다. 그날 주인공이 고등학교 친구라, 내 친구는 아니지만 얼굴만 아는 동창들이 어색한 손짓으로 인사를 건넸다. 
급하게 집에서 나오느라 결혼반지도 깜빡하고 유부녀의 상징인 C사의 가방만 겨우 챙겨 나온 나는 결혼식이 진행되는 동안, 또 특유의 취미를 살려 그들을 하나하나 관찰하기 시작했다. 남을 관찰하는 버릇은 정말이지,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일부러 하는 것도 아닌데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진행되어서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모든 관찰이 끝난 후다. 
어쨌거나 동창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누어지는데, 그 기준은 물론 결혼의 유무이다. 결혼한 친구들은 어김없이 왼손 약지에 큼지막한 다이아몬드가 박힌 무거워 보이는 반지를 끼고 있고 그 중 몇몇은 나와 똑같은 가방을 의자에 걸어놓고 있었다. 같은 테이블에 앉은 친구는_이 친구는 동창보다 가까운 진짜 친구이다_두 아들 중 첫째 아들만 데리고 왔는데 그녀의 의자에도 내 것과 체인 색만 다른 가방이 걸려 있었다. 30개월쯤 된 그 친구의 아들은 엄마와 가방이 똑같아서인지 유독 나를 잘 따라 집에 갈 때까지 처음 본 내 손을 잡고 놀았다. 
나뿐만 아니라 아마 그 친구들도 나를 보며 이미 자기 머릿속에서 많은 것들을 스캔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누가 나보다 잘살고, 누가 나보다 못 사는지까지 어쩌면 계산을 마쳤을지도 모른다. 결혼한 사람은 알겠지만 결혼 생활이라는 것은 밖에서 보는 것만으로는 쉽사리 알 수 없는 일이라, 속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겉으로 보기엔 다들 고만고만하게 사는 것 같았다. 고등학교 때는 전교 회장까지 하고 우리 동네에서 예쁘기로 소문났던 같은 테이블에 앉은 친구는 26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결혼한다고 해서 깜짝 놀랐었다. 그러고 나서 바로 회사를 그만 둔 건 지방에서 알아주는 부잣집에 시집간 덕분이라 생각했지만 그래도 자기 일을 그렇게 쉽게 그만둔 건 조금 의외였다. 그리고 지금은 아들 둘을 둔 엄마로 살고 있다. 물론 엄마로 사는 것이 나쁘다는 건 전혀 아니지만 대학생 때까지만 해도 동문회며 동아리 등 다양한 활동을 즐기던 친구가 남편 회사 근처에 집을 얻고 아기만 바라보고 산다는 것이 조금 아쉬울 때도 있다.
엄마가 되면 100% 엄마, 혹은 0% 엄마로 나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요즘 깨닫고 있는데, 괜히 어중간하게 50% 엄마로 살려고 하니 이것도 저것도 안 되는 것 같다. 어디를 가도 미안한 일만 가득하고, 미안한 사람들만 많다. 그것 때문에 더 잘하려고 하면 괜히 내 몸에 병나겠다 싶어서 요즘은 너무 욕심부리지 않으려 한다.
어쨌거나 결혼식장에서 만난 동창들을 보면, 결혼한 친구는 안 한 친구의 자유가 부럽고, 안 한 사람은 결혼한 사람이 내뿜는 그 특유의 안도감이 부러운 것 같았다. 그리고 누군가는 남을 보면서 안도감을 느끼는 것 같기도 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묘한 감정의 선들이 마구잡이로 난무하는 결혼식장. 이런 생각을 하느라 교회식으로 진행된 결혼식은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하지만 주인공은 자신들의 감정을 다스리는 것만 해도 정신이 없을 테니 나 하나쯤 딴생각으로 앉아있다 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by HYUNJEE | 2012/05/16 00:45 | 새벽의 기분 | 트랙백 | 덧글(6)

코스트코 케이터링.

며칠 전, 업무상 행사가 있어서 급하게 케이터링을 준비해야 할 일이 생겼다. 몇몇 업체들을 알아보니 가격이 만만찮아서 그냥 간단하게 코스트코에서 대강 하기로 결정하고 아침 8시 40분부터 코스트코 문 앞에 서 있었다. 알다시피, 코스트코 머핀이며 도넛은 몸에 좋은 거라고는 하나도 없는 불량 식품 맛이 나지만 오전 내내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굶었더니 뭐든 그냥 입에 넣고 싶은 욕심밖에 들지 않더라. 
어중간한 오후 시간대에 열린 행사라 다들 출출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더웠던 날씨 탓인지 음료수만 인기리에 매진되고 나머지는 왕창 남아버렸다. 결국 우리 팀들이 집에 한 아름씩 들고 갔다는 후문. 난 먼저 나오느라 쿠키 하나도 챙기지 못했지만 그 전에 두 개 정도를 먹었더니 그 어떤 음식도 아쉽지 않았다. 
마치 일회용 음식 같다는 느낌. 달달한 냄새 때문에 먹지 않고 옆에 둘 때는 그렇게 한 입이라도 먹고 싶었는데 막상 한 입을 베어 물면 그때부터는 더 이상 먹고 싶은 욕구가 생기지 않는다. 단 음식들이 주로 그런 듯. 물론 예외는 있어서 지금 이 글을 쓰는 시간에도 내 옆에는 커피빈의 초코무스 케이크가 있지만 말이다.
무튼, 시간이 더 많았으면 크루아상 샌드위치라도 만들고 아니면 치즈 케이크를 네모로 잘라 체리라도 하나 얹어 모양을 내고 싶었지만 너무 급박했던 탓에 근처 꽃집에서 작은 다발을 만들어 투명 컵에 담은 것이 전부였다. 어쨌거나 행사는 잘 마무리되었고, 다른 일 때문에 그렇게 일찍 출근했으면 속으로 은근 짜증도 났을 텐데 나보다 더 일찍 나온 상사와 함께 마트에서 첫 업무를 시작하니 그건 나름대로 재미있는 일. 요즘 좋은 날씨 덕분에 긍정적인 마음이 솟구친다.

by HYUNJEE | 2012/05/16 00:15 | 기억을 위한 기록 | 트랙백 | 덧글(4)

어른을 위한 주말 외출.

주말마다 이틀을 꼬박 학원 수업에 투자하는 남편 덕분에 주말은 무조건 친정밖에 갈 곳이 없었는데 지난 주말은 학원 수업이 없어서 갑자기 휴가가 생긴 듯 괜히 들떴다. 아무리 피곤해도 어딘가에 가야 한다는 일념으로 토요일에는 파주 롯데 아울렛을, 일요일엔 잠실 근처에 있는 백제 공원으로 나들이를 다녀왔다. 처음 카시트에 앉은 아기는 다행히도 아주 잘 적응해서 울지도 않고_그렇다고 웃지도 않았다_그럭저럭 무난하게 첫 시승식을 마쳤다.
매번 잠시 나갈 때마다 아기 띠를 했었는데 이제 유모차에 태우는 것도 연습시킬 겸 카시트에서 내리면 바로 유모차로 옮겨 태웠다. 처음에는 조금 짜증을 내더니 몇 번 유모차를 앞뒤로 밀어주자 곧 익숙해졌는지 얌전히 앉아 있는다. 평소 좋아하는 무당벌레 인형을 만지작거리며 혼자 노는 걸 보니, 이제 조금 컸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물론 아울렛에서 매장에만 들어가면 울려는 자세를 취한 탓에 제대로 된 쇼핑은 역부족이었지만 이렇게 데리고 나갈 수 있는 것만 해도 큰 발전이다.
사실 주말에 밖으로 나가는 건 아기를 위해서라기보다는 답답한 어른들을 위한 일. 주말마다 집에 있기도 답답해서 최근 몇 주는 아기를 안고 여기저기 다녔는데, 아기에게 "우리 가로수길 갈까?"하고 말하는 나를 보고 엄마가 "아기가 가로수길이 왜 가고 싶겠어?"라며 집에 좀 있으라고 하신다. 하긴 카시트나 유모차에 앉아 있는 아기 표정이 영 시무룩한 걸 보니, 사람들로 득실대는 시내에 나가는 것보다 집에서 장난감 가지고 노는 걸 아기는 더 좋아하는 것 같다. 결국 내 욕심 때문에 외출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주말부터는 또 학원 수업이라, 아기를 데리고 놀러 가지 못한다는 죄책감에 지난 주말 열심히 밖으로 다닌 남편은 아기가 생각보다 좋아하지 않자 영 실망한 눈치다. 고작 8개월에 접어든 아기는 아무래도 마음껏 뒹굴 수 있는 곳에서 왼쪽, 오른쪽 뒤집기나 하는 것이 더 즐거운 것 듯. 역시 외출은 어른들을 위한 일일 뿐이었다.

by HYUNJEE | 2012/05/09 00:30 | 복숭아 키우기 | 트랙백 | 덧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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