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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주부의 역할.

온전한 주부(일 안 하고 육아와 가사에 힘쓰는 상황)로 산 지 두 달이 지났다. 하루하루 견뎌내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막상 시간이 너무 잘 간다. 아침에 일어나서 애 밥 먹이고 치우고 반찬 좀 하고 나면 어느덧 남편의 퇴근 시간이고, 일주일 중 가만히 집에 있는 날이 거의 없어서 아이와 함께 외출하고 돌아오면 정말 하루가 다 지나가고 깜깜한 밤이다.
일하지 않는다는 자책감에서 아주 조금 벗어났지만 이제 앞으로 뭔가 해보겠다는 의욕에 불타 머리만 팽팽 돌리고 있던 중 드디어 어린이집의 문턱을 처음 넘었다, 오늘.
그래 봤자 한 시간 남짓 아이와 함께 가서 놀다 온 것이 전부. 아이는 더 놀 수 있는데, 더 놀고 싶어하는데 선생님이 그래도 며칠 이렇게 조금씩 있다 가는 게 낫다고 점심 먹기 전에 가라고 하셔서 집으로 돌아왔다.
편도 6km 정도의 꽤 먼 곳에 위치한 어린이집이라 사실 운전해서 데려다 주고, 또 데리러 가는 것 자체가 큰일이지만 이 동네에 언제 어린이집 자리가 날지 몰라 어쩔 수 없이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새해가 되자마자 뭔가 변화가 시작된다. 배우고 싶은 것도 있고 계획도 차곡차곡 쌓이는 1월이다. 잘 될지 안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지만 시작해보지 않고서는 나조차도 알 수 없으니 일단은 시작해보는 게 좋다.
여기서 생뚱맞은 이야기지만, 초보 주부와 베테랑 주부의 차이는 이것이 아닐까 한다. 초보는 오늘 무슨 반찬을 할지 생각하고 그에 맞는 장을 보고, 베테랑은 냉장고에 있는 반찬을 훑어보고 제대로 된 음식을 만든다. 난 물론 초보에 가까운 쪽으로 오늘도 냉장고에 있는 두부와 팽이버섯을 보고 된장을 끓여야겠다고 생각하고 다시물을 내다가 호박과 양파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 마트에 다녀왔다.
무튼 긴 겨울의 시간이 조금씩 흘러가고 있다. 견디는 것에 더해 즐겁게 견디는 것이 필요한 때다. 무엇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다는 걸 알기에 내 나름의 최선을 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내일은 아침부터 아이가 먹는 쌀밥도 해야 하고 저녁엔 남편을 위해 현미와 잡곡이 뒤섞인 어른 밥도 해야 한다. 밥솥이 두 개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람이 갑자기 간절해지는 밤이다.

by HYUNJEE | 2014/01/07 00:23 | 새벽의 기분 | 트랙백 | 덧글(0)

풀타임 육아.

3제도 지났는데 올해는 무슨 고난의 해인지 안 좋은 일이 줄줄이 일어났다. 물론 더 좋지 않은 일을 생각하면 이 정도면 다행이야_하고 스스로 위로하긴 하지만, 다른 것보다 일적으로 정말 되는 일이 없다. 열심히 해도 엎어지고 별로 상관도 없는 라인 때문에 라인 정리당하고 같은 업종 종사자들이 다들 힘들다고 하니, 큰 틀의 문제이기도 할 테지만 무튼 결론은 안 좋을 일이 계속 일어난다.
그중에 다행인 건 어쩌면 적절한 시기에 안 좋은 일이 일어났다는 것 정도인데, 일을 그만두게 된 시점과 1년 반이 넘게 아기를 돌봐주던 아주머니와의 계약이 끝나는 시기가 맞아떨어졌다.
덕분에 일을 끝내는 동시에 아기가 태어난 지 100일 이후로 처음 풀타임 육아에 돌입. 주말은 물론, 긴 연휴 때도 일주일 가까이 아기를 돌보기는 했지만 이렇게 제대로 육아를 하는 건 정말 오랜만이다. 이제 내가 아기의 생활 리듬을 잡아줘야 하고_추운 날씨 덕분에 게을러진 나 때문에 아기의 리듬도 점점 게을러지고 있다_종일 아기와 함께 무언가를 해야 한다.
신생아 때에 비하면 지금은 뭐 일도 아니지만, 그래도 어쨌든 아기와 함께 있을 때 나만의 무엇을 할 수 없다는 건 지금도, 앞으로 한동안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그래도 이제 너무 과하게 말을 다 해서_며칠 전엔 내 눈을 보며 "엄마 눈에 연서 있어." 라고 하는데 정말 깜짝 놀랐다_의견 소통에는 문제가 없다. 다만 아기와 내가 의견이 다른 게 문제일 뿐.
점점 혼내는 방법과 올바르게 알려줘야 할 것들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이 된다. 뭐 누구의 방법이 옳은 건지, 또 어차피 아이에 따라 차이도 있어서 기본적으로는 화내는 것들에 대해 일관성을 가지자는 것이 지금의 유일한 생각이다.
열흘 남짓 애를 보면서 생각한 건 그 정도로, 육아를 제외한 다른 것들에 대해서는 최대한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일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면 밤잠을 못 잘 정도로 조급해지고 마음이 가라앉아서 육아에 방해가 된다. 적어도 몇 주 정도는 최대한 아무 생각도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는데, 열흘 정도 지나니 이제 슬슬 또 한계에 부딪히는 것 같다.
내 최대 단점인 의지박약이 그나마 아이 키우면서 좀 나아졌는데도 아직 의지가 약해서 부족하다. 날이 추워지니까 더 심해진다. 겨울엔 특히 더 의지가 약해지는데 점점 추워지는 날씨를 보면 걱정도 커진다.
그래도 아직은 떨어지는 은행잎 보면서 예쁘다는 생각이 드니까 그나마 괜찮은 듯. 종일 아기랑 둘이 집에 있으면 하루가 길다가도 짧다. 꼭 해야 하는 것들을 하다 보면 시간이 다 간다. 할 일을 다 하고 이제 여유롭게 아기에게 책을 읽어줘야지, 싶으면 아기 재우기 10분 전이다. 하루하루가 지나치게 빨리 흘러간다. 그래도 밤이 되면 오늘 하루도 무사히 지나가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점점 현실이 아닌 드라마에 집착하게 되는 것이, 얼른 어린이집에 자리가 나서 아이에게서 격리된 나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인 듯.
그래도 돌아서서 생각하면 언제 또 이렇게 아기와 둘이서 지낼 시간이 있을까 싶기도 하다. 어쨌든 시간이 주어졌으니 최대한 열심히 놀아야지, 아기 입장에서. 해가 빨리 져서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다.  

by HYUNJEE | 2013/11/14 17:51 | 복숭아 키우기 | 트랙백 | 덧글(2)

삶의 간소화.

갈수록 점점 삶이 간소화되는 걸 느끼고 있다. 집과 회사만 오가는 생활을 3년 전만 해도 상상이나 했겠는가. 문제는 이것만으로도 벅차서 밤엔 기절할 듯 잠이 들고, 머리는 체크해야 할 사항들이 한가득이라는 것. 거기에 시댁과 친정 식구들의 대소사까지 합하면 정말 용량 초과 상태가 된다. 이러니 10년이 넘도록 자연스럽게 기억해오던 친구 생일도 까먹는 일이 벌어지고 만다.
하루에 약속을 몇 개나 잡던 예전의 나는 이미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나마 나는 그래도 동생과 잠시 짬을 내어 커피도 마시고 이런저런 일도 하는 데 비해 남편의 삶은 더욱 간소하다. 집과 회사, 그리고 거기에 학원이 추가된 삶은 온전히 3등분 되어 다른 곳에 신경 쓸 여력은 하나도 없다.
일 때문에 새벽에 들어오는 날에는 내가 언제 그랬었느냐는 듯 바깥 세상이 낯설게 보일 정도. 좋다, 나쁘다를 떠나 앞으로는 지금보다 더 간소화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아기가 크면 함께 할 수 있는, 또 해야 할 일도 많아지고 행여 아기가 둘이 되는 날에는 정말 집과 회사에서 더 간소화되어 오직 집에 얽매일 수도 있겠지만 그것 또한 몇 년이면 지나갈 일이다.
순간순간 이런 간소한 삶이 못 견딜 때도 있다. 당장에라도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떠나 새로운 사람들에 둘러싸인 생활을 단 며칠이라도 하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물론 실행에 옮기기엔 너무 과한 욕심이다. 그렇다고 못 하는 것들, 간소화된 그래서 가슴 뛰지 않는 삶에 불만을 이야기할 수만은 없다. 앞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하는 것이 차라리 더 생산적인 일이니까.
보아하니 30대는 이렇게 지나갈 것 같고 40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자녀 교육에 몰두한 학부모가 될 수도 있고, 주변에서 보기 드물게 아이들을 독립적으로 키우는 엄마라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 어느 것도 내 선택_물론 내 맘대로 되진 않겠지만_에 따라 결정될 일들이 남아있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간소화되지만 내적으로는 그래도 활발한 활동을 하는_가정만 해도 할 일이 아주 다양하게 많이 있다_40대가 되려면 적어도 긍정적으로 모든 일을 받아들여야 한다. 비록 그것이 가정에 국한되지 않고, 불합리한 일들이 넘치는 조직에서라도 말이다. 어차피 비정규직인 이상, 어디를 가나 불안정한 환경은 마찬가지니까. 어쨌거나 현실은 겸허히 받아들이고 내가 할 수 있는 선 안에서 제대로 하는 수밖에 없다.

by HYUNJEE | 2013/10/28 23:44 | 새벽의 기분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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