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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살 동갑내기 소개팅의 전말.

얼마 전, 올해 들어 서른여섯이 된 외사촌 언니와 남편의 지인에게 소개팅을 주선했다. 둘의 공통점으로는 나이와 키가 작다는 점, 그리고 남자는 연애 경험 1번, 여자는 모태 솔로라는 도토리 키재기 연애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나머지 조건으로는 학벌은 여자가 좋고 직장은 남자가 좋다. 서른여섯이나 먹어서 학벌 운운하는 것 자체가 조금 웃긴 일이지만 여자에게는 뭐 나름 중요한 부분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어른들의 기대 속에 둘의 만남은 이루어졌고 결론은 서로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상태로 끝이 났다. 남자는 자기의 인연이 아닌 것 같다는 말로 일축했고 여자는 재미가 없었단다. 여기서 여자가 말하는 재미는 유머러스한 것보다 자신과 말이 통하는가 아닌가에서 오는 재미를 뜻한다.
둘 다 형제와 자매 중 둘째고 맏이가 결혼하지 않았다는 공통된 상황이라, 둘째만이라도 제발 결혼을 하길 바라는 부모님의 염원은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누가 딱히 잘나고 못나고 한 조건도 아닌지라 괜찮겠다 싶었는데 역시 솔로 탈출은 쉽지 않다.
여자는 성격이 강하다. 집안에서 어릴 때부터 성격이 세기로 유명했었다. 평생 연애를 하지 않았으니 연애가 좋은지도 모르는데 부모의 등쌀에 못 이겨 계속 선을 보고 있다. 하지만 다들 알지 않는가, 나이가 많고 특별히 미모가 빼어나지도 않은데 똑똑하기까지 한 여자라면, 좋아할 남자가 별로 없다는 사실을. 남편의 지인이자 우리 부부와 이미 많이 가까운 사이인 소개팅의 남자 주인공은 부드럽게 돌려서 소개팅의 전말을 말해주었다. 
이미 소개팅 날짜를 잡기 위해 전화를 할 때부터 여자의 성격은 드러났다. 보통 처음 통화에서는 서로 날씨 얘기도 하고 이런 저런 얘기도 한 후에 약속을 잡는 게 대부분인데 여자는 먼저 "다음 주 괜찮으시죠? 수요일 어때요?" 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고, 어리둥절한 남자는 일단 알았다고 약속을 잡았다. 그리고 만나는 날 레스토랑 예약까지 성격 급한 여자가 이미 해 놓은 상태.
만나서는 독서토론회처럼 서로의 독서 취향 및 문화적 취향에 대한 얘기가 나왔는데, 여자가 하는 말 "아프니까 청춘이다, 같은 책을 읽는 사람은 정말 이해가 안 돼요. 그럴 시간 있으면 영어 공부라도 하나 더 할 생각을 해야죠!".
남자나 여자나 둘 다 별 어려움 없는 가정에서 컸지만, 여자는 추리소설을 좋아해서인지 감성적인 글이나 영화는 전혀 취미가 없단다. 문제는 자신의 취향을 상대에게 어떻게 말하느냐인데, 좀 더 부드럽게 포장해서 할 줄 모른다는 게 여자의 문제. 선을 볼 때마다 거의 애프터 신청을 받지 못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어차피 자신과 똑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을 찾기는 힘들다. 나 또한 남편과 취향이 맞지 않아 영화 한 편 같이 보기가 어렵다. 하지만 취향이 맞는 사람을 찾으려면 동호회를 가야 하는 거 아닌가. 취향이 맞지 않아도 이성 간에는 공유할 것들이 충분히 많다. 
결국 두 시간 만에 밥과 차라는 소개팅의 절차를 모두 밟은 남녀는 각자 헤어져서 집으로. 여자는 집에 돌아가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한 번 더 만나자고 하면 다시 만날 수는 있다고 말했고 남자는 별로 다시 만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냥 여기서 끝났으면 별문제 없는 소개팅이었을 텐데, 문제는 하루라도 빨리 시집을 보내고 싶어하시는 여자의 부모, 즉 나의 외삼촌 외숙모께서 딸의 이러한 말을 오해하고 남자 쪽에 한 번 더 만나자고 말해보라고 했다는 점이다. 남편과 나는 남자 쪽에 연락을 해서 여자의 장점을 반복해서 이야기하며 다시 한 번 보자고 얘기를 해놨는데, 알고 보니 여자의 그 말은 예의상 멘트였다는 사실.
막상 다시 만나도 별로 달라질 것 없다는 여자의 말에 가족들은 깜짝 놀라고, 이런 상태에서 다시 만나는 것도 웃기도 그렇다고 남자에게 다시 만나지 말라고 하는 것도 웃기고. 서른 여섯 살의 외사촌 언니는 어릴 때 만화책에 푹 빠져 살아서인지 아직도 백마 탄 왕자님을 기다리는 것 같다. 언니가 맘에 들어 했던 남자들은 이미 다들 장가갔다는데 아직도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있으니 답답할 노릇. 괜히 중간에 끼여서 우리 부부만 애매하게 됐네.
남편에게 말해봤자 좋은 이야기를 들을 것 같지도 않아 일단은 침묵 중. 정말 노처녀 노총각 결혼시키기 힘들다. 그래도 둘이 잘 되면 서로 효도하는 건데 말이지.

by HYUNJEE | 2012/01/20 12:33 | 기억을 위한 기록 | 트랙백 | 덧글(15)

샤워할 때조차 적절한 때를 기다려야 한다.

다른 집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살았던 집_새집이든 헌 집이든_들은 모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법칙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샤워할 때 처음부터 뜨거운 물을 틀면 내가 원하는 만큼의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처음에는 중간에서 뜨거운 쪽으로 조금 치우친 정도의 물을 살짝 틀어놓았다가 어느 정도 따뜻한 물이 나온다 싶으면, 그때야 조금 더 뜨거운 쪽으로 밸브를 돌리면 그땐 정말 피부가 빨개질 정도의 뜨거운 물이 콸콸 나온다.
처음부터 확 뜨거운 물을 틀면 물의 온도가 올라가기도 전에 자신의 최고치에 이미 밸브가 맞춰져 있어서 진정한 뜨끈함을 선보일 시간적 여유가 없다_는 것이 나의 이론적 토대랄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뭐든 마찬가지이다. 처음부터 너무 급하게 최고를 잡으려 조급하게 굴면 도리어 제대로 된 기회를 놓칠 수도 있다.
며칠 동안 나를 괴롭히던 보이지 않던 압박이 이 생각을 하는 순간, 스르르 눈 녹듯이 사라졌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이 그렇게 조급하게 굴 것 없다고 말해준 것도 한몫했다. 실제로 며칠에서 길게는 한두 달, 어떻게 보면 길지만 어떻게 보면 말도 안 되게 짧은 시간이다. 대신 그동안 마음을 가다듬고 찬찬히 지금 당장 나에게 주어진 일을 하면서 정말 좋은 기회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게 더 현명한 삶의 선택일지도.
밖에서 차가워진 손을 녹이거나 샤워를 할 때조차 일정한 시간의 기다림은 필요하다. 뭘 해도 성공하는 사람과 뭘 해도 중간밖에 되지 않는 사람의 차이는 그 기다리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달려있지 않을까 싶다. 그런 마음으로 어제는 조금 늦게까지 간만에 집중해서 작업을 했다.
쓰다 보니, 내가 싫어하는 자기 계발서의 글처럼 되어버렸네. 그래도 어찌 되었든 난 마음의 평화를 얻었고_며칠이나 갈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_일단은 뭐든 미루지 말고, 게으름 피우지 말고, 엉덩이 가볍게 살자는 것이 오늘의 핵심 포인트되겠다.  

by HYUNJEE | 2012/01/15 11:59 | 새벽의 기분 | 트랙백 | 덧글(0)

한남동 5mile의 실체.

아이폰으로 마구 찍어댔더니, 빛도 엉망이고 사진들 밸런스도 전혀 아니지만, 어쨌거나 기억을 위한 기록이니까 괜찮다고 생각하며 블로깅. 여름에 갔을 때만 해도 사람도 별로 없고 한산하더니, 오늘은 사람들이 북적북적. 천장이 높아서 그런지, 테이블 배치가 탁월해서 그런지 사람들이 많은데도 별로 시끄럽지가 않다.
지난번에는 간단하게 차만 마셨는데 오늘은 제대로 식사. 도미살이 올려진 봉골레 파스타와 오믈렛, 유명하다는 카르보나라 그리고 사진에는 없지만 마르게리따 피자를 시켜 깨끗하게 먹어치웠다.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도미살도 두툼하고 적절하게 삶긴 카르보나라의 달걀도 맛나고_노른자가 목으로 스르륵 넘어간다_오믈렛도 튼실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컵이며 물병 등 자질구레한 집기들이 매혹적이다. 카푸치노가 담겨 나온 잔은 나오는 순간, 다들 예쁘다며 반해버렸다는 후문. 그리고 매장에서 직접 굽는 식빵 또한 음식 맛을 더해줘서 파스타보다도 함께 나오는 식빵이 더 맛있을 정도. 마음을 빼앗겨버린 주전자와 물컵은 일본에서 직접 공수해왔다니 사고 싶어도 살 수 없어서 안타깝다.
우리 집에서 버스로 세 정거장이면 바로 앞에 내리는데다가_2시간 주차도 가능_그 옆에는 내가 좋아하는 함박스테이크 가게까지 있어서 앞으로도 자주 찾을 것 같다는 예감. 봄이 되고 여름이 되면 시원한 테라스에서 먹어도 좋겠다. 마지막으로 카푸치노에 대해 말하자면, 보통 거품이 대강 올라와 있어서 거품과 커피가 제대로 분리되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이곳은 확실히 구분되는 덕분에 거품을 제대로 즐길 수 있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오랜만에 꽤 만족스러웠던 카페_라기보다는 레스토랑.

by HYUNJEE | 2012/01/14 18:03 | 기억을 위한 기록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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